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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전시

"뮤지컬 영웅", 영웅에 대한 재조명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을 기념하여 만든 창작 뮤지컬 "영웅"은 "명성황후"로 유명한 에이콤에서 4년간의 제작기간을 거쳐 내놓은 수작입니다. 2010년에는 제4회 더 뮤지컬 어워즈와 제16회 한국뮤지컬대상에서 최우수 창작뮤지컬상과 최우수 작품상 등 총 12개 부문에서 상을 받는 등 작품성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입니다.

이런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처음에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를 가지고 뮤지컬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어을때 저는 바로 고개를 갸우뚱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내용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봤자 그렇고 그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 뮤지컬과 관련된 이벤트가 있었을 때에도 과감히 무시하곤 했는데, 의외로 이 뮤지컬과 관련된 평이 너무 좋았습니다. 결국 "어차피 이벤트 신청한다고 다 되는것도 아니고 어차피 손해 보는것도 없는데 한번 해보자!"라는 마음에 신청을 했는데 덜컥 당첨이 되어 보게 되었답니다.

간만에 찾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입니다. 예전에 이곳에서 지금의 와이프와 같이 "캣츠, 오리지날 내한공연"을 봤던 추억이 있는 극장입니다. 그때는 친구사이로 봤는데 이번에는 부부라는 이름으로 같이 보게 되니 왠지 감회가 새롭더군요.

사전정보 없이 보러 왔기 때문에, 일단 오늘의 캐스팅 부터 확인해봤습니다. 오늘의 안중근 역할은 양준모가 맡았네요.

안중근 의사 역할은 신성록, 양준모, 정성화 이렇게 세명이 캐스팅 되었습니다. 똑같은 안중근 의사 역할인데 분위기에서 차이가 느껴지지 않나요? 이 세명중 2009년 초연 당시에 참여 했던건 정성화 단 한명이고 나머지 두명은 새로 캐스팅 된 인물들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영웅OST 중 정성화 버전은 매진으로 구매 할 수가 없더군요.

티켓을 받아 확인했더니 R석입니다. 사실 S석인줄 알고 왔다가 R석 티켓을 받으니 무슨 물건을 사고 덤으로 무언가를 더 받은 느낌입니다. 

영웅에 대한 재조명

사전전 의미의 영웅은 지혜와 능력이 뛰어나고 용맹하여 보통의 사람이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내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뮤지컬 영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런 사전적 의미의 영웅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뮤지컬 영웅'에는 크게 보면 두명의 영웅이 등장합니다.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입니다.

의병군 참모중장 안중근은 활발한 의병활동과 이토 암살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는 등 애국심에 넘치는 인물입니다. 법정에 섰을 때 변호사 앞에서 "내가 이토를 죽인 15가지 이유" 를 읆어 될때도 당당하면서도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도 만두앞에서 허기짐을 느끼고, 그를 돕던 친구 왕웨이가 죽었을때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이토 암살 계획을 세우면서도 천주교도로서 "과연 이게 옳은것인가" 스스로 번민하고 괴로워하는 약한 모습도 보여줍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대한제국 입장에서는 조선식민지호를 주도한 원흉이지만,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메이지정권의 최고실력자로 등극하는 인물입니다. 제국헌법의 기초를 만들어내고 을사조약을 체결하고 조선 초대통감으로 부임하는 등 일본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영웅입니다.

이러한 이토 히로부미도 고독을 느끼고 황혼의 쓸쓸함을 토로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또한 설희가 암살할려고 했을 때도 총으로 쏘지 않고 놓아주는 모습에서 인간적인 모습도 엿볼 수 있습니다.

'뮤지컬 영웅'에서는 안중근이 치바 감옥에 갇혔을 때 이토 히로부미의 환영이 나타나 서로 대화하는 장면에서 절정을 이루며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바로 가치관이 다른 두사람이 바라는 것은 서로 달랐지만, 조국을 위해 삶을 살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점과 조국을 위하고 사랑한다는 점에서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뮤지컬 영웅'에서는 보이지 않는 영웅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민비를 모시던 궁녀 설희가 일본으로 넘어가 스파이로 활동하는 모습, 친구를 위해 목숨을 내놓는 만두가게 주인 왕웨이, 안중근을 사랑하며 그를 대신해서 총을 맞는 링링, 이토 암살을 같이 도모하는 동지들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숨은 영웅들입니다.

결국 영웅이란 고뇌하고 번민하는 일반 사람들과 별 차이가 없는 보통 사람들이지만 조국을 위해 헌신했던 모든 이들이었던겁니다.

압도적인 무대 연출

국내 무대 연출 기술이 진일보 했다고 느꼈을 만큼 무대 연출은 압권이었습니다. '뮤지컬 영웅'은 중간중간 살짝 지루한 장면이 있는데(제 와이프는 몰입해서 봤기 때무에 절대로 지루한 장면이 단 하나도 없었다고 옆에서 계속 강조하고 있네여), 이것을 무대 연출이 커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추격신과 기차신이었습니다. 

쫓고 쫓기는 추격신은 철재를 이용하여 추격 장면을 긴박하면서도 입체적으로 표현했습니다. 평면인 무대에서 추격 장면을 연출해 봤자 왔다갔다 하는 수준이었겠지만, 철구조를 이용하니 입체적으로 표현이 가능하더군요. 위에서 떨어지고 철구조 위에서 도망다니고 갑자기 무대위에서 왔다갔다하니 긴박함이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또한 무대 벽이 이동하고 영상이 그 위에 비춰지면서 유리창이 깨지는 효과까지 내니 보는 내내 놀라웠을 따름입니다.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으로 이동하는 기차신은 또다른 놀라움이었습니다. 열차가 달리는 모습이 보이더니 어느새 기차 내부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이런 기발한 연출은 과연 누구의 머리에서 나왔을까요?

이외에도 영상, 조명, 조형물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무대 효과를 최대한 아끌어냈습니다.
 
가슴이 찡한 뮤지컬

역사적인 사실을 배경을 토대로 만들어진 뮤지컬이라 그런지 중간중간 찡한 장면도 있었습니다. 

1막 마지막 부분에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기 위한 결의를 하면서 "거사를 위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있는데, 듣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울컥 하더군요. 이순간 옆에 있는 와이프를 보니 이미 눈이 홍건이 젖어서는 울고 있더군요.

안중근 의사가 법정에서 '이토를 죽인 15가지 이유"를 읆을 때는 숨소리 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객석은 숙연한 분위기였습니다.

참고로 제 와이프는 눈물 콧물 다 흘릴 정도로 가슴이 찡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에 묵직한 무언가를 담고 나올 정도의 뭉클함을 느꼈다고 합니다.

공연 종료 후에는 주연배우 사인회가 준비 되어 있었습니다. 프로그램도 구매 했는데,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겠죠?


간만에 쓰는 부부 한줄평입니다.

: 이렇게 재미 있을줄 몰랐다. 무대 연출은 예술 그 자체다. 
와이프 : 제값 다주고 봐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재미 있었고 감동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