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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전시

연극 '대머리 여가수'에는 대머리 여가수가 없다


저는 공연을 보고 나올 때 관객들이 하는 말을 살짝 엿듣는 편입니다. 다른 분들은 나와 같은 공연을 보고 나서 과연 어떤 느낌이었을까에 대한 궁금증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때 나눈 대화만큼 짧지만 솔직한 평도 없습니다.

연극 '대머리 여가수'에 대한 평은 어땠을까요?

"잘자고 나왔다"
"하이 코미디라 내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려웠다"
"할인 안받고 전액 다 지불한 사람은 돈이 정말 아까웠겠다"
"내가 웃은게 웃겨서 웃은게 아니야. 어이가 없어서 웃은거야"

연기자들의 연기는 훌륭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평은 좋지 않았습니다. 일부 관객들의 의견만 들었으니 전체를 대변한다고는 볼 수 없지만 저도 약간은 어렵게 본터라 공감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막연하게 '재미없다', '어렵다'라고 치부하기에는 약간의 여운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집에 와서 열심히 이 연극에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았답니다.

'대머리 여가수'는 이오네스코의 작으로서 1950년 파리의 녹탕뷜 극장에서 초연 되었던 작품입니다. 당시 '연극도 아니다'라는 혹평과 '획기적'이라는 호평이 공존했었던 문제작으로 초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단 한번의 중단없이 장기 공연중이라고 합니다.

이오네스코의 초창기 작품 같은 경우에는 대부분 푸대접을 받았는데, '의자들'이라는 공연 같은 경우에는 관객들이 환불 소동을 벌였으며 심지어 배우들은 뒷문으로 도망가야 했을 정도라고 합니다. 1960년 그의 작품 '코뿔소'가 성공하면서 '대머리 여가수'를 포함한 그의 초기 작품들이 재조명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하는군요.

'대머리 여가수'는 부조리극의 효시라고 불리는 작품입니다.  부조리극은 현실에 존재하는 부조리함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지만 그 특정 상황을 유도해 낼뿐 극을 통해 어떠한 해결책, 암시, 충고 등을 하지 않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 또한 극을 통해 '특정 이데올로기나 주제'를 던지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연극'을 강조하거나 정형화된 연극의 틀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반연극이라고도 합니다.

그렇다며 현재 공연하고 있는 '대머리 여가수'에 대해서 이야기해야겠죠?

현재 공연하고 있는 '대머리 여가수'는 무대가좋다의 6번째 작품으로서 기존 이오네스코의 원작을 한국적 정서에 맞게 각색하고 코믹하게 연출해 냈습니다. 그러나 한 중년가정을 통해 소통 불능에 빠진 현대인을 삐꼬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합니다.

오늘의 캐스팅입니다. TV 브라운관에서 익숙한 안석환씨는 소방관 역할로 나옵니다. 또한 연출과 각색도 직접 했다고 하는군요.

객석에 들어서면 공연전 부터 3명의 광대가 왔다갔다 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움직임 역시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무대는 정말 단순합니다. 무대 자체도 특별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게 아닐까요?

공연이 시작되고 서씨 부부가 등장하면 알수 없는 대화들이 오갑니다. 간혹 웃기기도 하지만,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수가 없습니다. 마씨 부부와 소방관이 등장해도 말장난 같은 대화들만 오갈뿐 특별한 사건이 발생하는 것도 없습니다. 2분 정도 공연이 중단 되기도 합니다. 

마지막에 배우들이 아무 이유없이 공들을 객석으로 던져 됩니다. 그러더니 어느덧 공연은 끝을 맺습니다.

기승전결이 없는 스토리와 갑자스런 끝맺음은 결국 황당함만 안겨줍니다. 

연극 '대머리 여가수'에는 대머리 여가수에 대한 언급이 단 한번 있을뿐 대머리 여가수는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대머리 여가수'라는 제목을 봤을 때 대머리 여가수가 등장한다고 생각했던건 제 고정관념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연극에서 '대머리 여가수'라는 것은 그냥 제목에 불과 할뿐 아무 의미도 없는 글에 지나지 않습니다. 왜 전 제목이 연극 내용과 관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을까요?

하녀의 이름은 셜록홈즈입니다. 하녀의 이름이 설록홈즈이니 당연히 이 연극에서 무언가 추리를 해내는 역할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단순히 하는 역할이란 서씨 부부가 부부 관계가 아니라는 사실만 일깨워 줄 뿐입니다. 결국 하녀의 이름이 설록홈즈일뿐 그 단어에 담긴 의미는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죠.

말도 안되는 대화가 오가는 와중에 중간중간 극의 흐름을 끊는 침묵이 흐릅니다. 그런데 말도 안되는 대화보다 이 침묵이 더 견디기 힘든건 저만이었을까요? 사람들은 어쩌면 아무 의미없는 대화를 통해 소통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고독을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하고 있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쩌면 '대머리 여가수'는 단순한 연극에 불과한데, 무슨 메시지를 던져 주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제 자신도 부조리에 빠져 있는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