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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전시

뮤지컬 '우리동네',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


우리의 일상은 늘 반복의 연속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회사에 출근하며, 퇴근해서는 지인들과 술을 한잔 걸치거나 아니면 바로 집으로 향한다. 그리고 이런 하루는 또다시 반복된다. 하루의 내용은 약간씩 차이가 있으나 톱니바퀴 돌아가듯 일상은 그냥 그렇게 흘러간다. 이런 소소한 일상이 소중하다고 느끼거나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는 이들은 과연 몇이나 될까?

뮤지컬 '우리동네'는 이런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뮤지컬이다. 원래 '우리동네'의 원작은 숀톤 와일더의 'Our Town'으로 대공황 시대의 한 마을을 한국적으로 각색하여 1980년대의 파주의 한 마을로 무대를 옮겨 놓은 것이 차이점이다.

밋밋함에서 감동으로

뮤지컬 '우리동네'는 총 3막으로 구성 되어 있다. 마을의 평범한 일상과 상우와 선영과의 풋풋한 사랑이야기가 1막, 상우와 선영과의 결혼식은 2막, 선영의 죽음이 3막. 그리고 마지막에는 프로포즈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다.

첫 1막은 무대 감독의 해설과 경쾌한 탭댄스로 시작이 된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보여주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있노라면 밋밋함이 느껴진다. 무대에서 열연하는 배우들의 노래 실력과 연기력은 꽤 좋기에 시나리오에 대한 아쉬움은 더욱 더 크게 남을 정도다. 그러나 2막이 지나 3막이 되면 이 밋밋함은 어느새 감동으로 끝을 맺는다. 내 옆에 있던 와이프는 지루한 표정으로 시작해서 3막쯤 되니 폭풍같은 눈물을 흘리더라.....

신선한 무대 연출

이 뮤지컬은 무대도 단순하지만 소품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처음에 이 공연 자체가 문화적 약자와 다문화 공동체 기금 마련 공연으로 기획 되어 비용 절감 차원에서 소품을 사용하지 않는 줄 알았다. 그러나 알고 보니 이것도 하나의 연출이다. 

신문을 읽는 장면, 야채를 칼로 자르는 장면은 소품을 이용하지 않고 오로지 배우들의 마임으로 표현한다. 배우들은 이런 상황을 관객에게 대사로 전달할뿐 모든 것은 관객의 상상에 맡긴다.

때론 관객들도 무대의 한 장면이 된다. 관객 한명 한명이 배추나 무같은 야채로 묘사 되거나 결혼식 장면에서는 하객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화자인 무대감독은 중간중간 상황 설명을 하면서 관객과 끊임 없는 소통을 시도하는 모습이 이채롭다.

서정적인 뮤지컬 넘버와 경쾌한 탭댄스

이 뮤지컬에는 상당히 실력파 배우들이 출연한다. 발성은 물론 표정 연기에서도 관록이 느껴진다. 이와 더불어 뮤지컬에서 제일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인 뮤지컬 넘버 들도 좋은 것이 상당히 많다. 서정적인 멜로디와 단순한 가사는 무대감독의 설명과 배우들의 연기로 표현 할 수 없는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훌룡한 대사의 역할을 한다.

또 하나 눈길을 끌만한 부분은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배우들의 군무로 이루어진 탭댄스다. 대형 뮤지컬인 '브로드웨이 42번가'나 '빌리 엘리어트'에나 등장할만한 탭댄스가 등장하는 것은 이 뮤지컬을 보는 큰 재미 중에 하나다. 

결코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던 3막

사람은 무한한 시간을 가진듯 살아가지만 사실 우리네 삶이란 유한함 그 자체다. 삶이란 길고 긴 여행이 아니라 죽음에 한발한발 더 다가가는 삶이라면 조금 섬짓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그래서 삶의 소멸을 이야기 하고 있는 3막에 이르면 밝게 시작 되었던 뮤지컬이 무거움으로 다가선다. 

예전에 나의 아버지는 어린 나에게 '매일매일 죽는 사람들'에 대한 시에 대해 이야기 해준적이 있다. 사람은 차에 치일 뻔할 때도, 수영하다가 익사해 죽을 뻔하기도 하는 등 매일매일 위험에 처해 있지만 지금 이 순간은 살아있다. 그래서 매일 살아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고.

이런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을 '우리동네'를 보면서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오랜만에 대학로에서 만난 좋은 뮤지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