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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전시

콜렉터-그 놈의 초대, 두 사이코패스가 만났을때


2인극 페스티벌 참여작인 12작품 중에 하나인 극단 마고의 연극 '콜렉터 - 그 놈의 초대'는 존 파울즈 원작 '콜렉터'의 번안극이다. 한때 여배우가 10분 이상 전라에 가까운 노출을 시도한다는 이유로 외설 논란에 불을 집혔던 문제의 연극 '미란다'의 원작이기도 하다.

'콜렉터 - 그 놈의 초대'는 납치, 감금, 사회의 두 계층, 자유박탈 등 원작의 요소는 그대로 가져 왔으나, 원작을 번안하면서 스릴러물로 재탄생시켰다. 이렇게 각색된 연극은 지루할 틈 없이 구성이 탄탄 할뿐만 아니라 두 주연 배우인 김은아와 심완준은 흡인력 있는 연기력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럴까. 70분 내내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면서 섬뜩섬뜩한 느낌을 중간 중간에 받는다. 정신건강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연극이지만, 오랜만에 본 수작임에는 틀림없다.

대략적인 줄거리

한국의 마리아 몬테소리라고 불리는 신경외과의 김지숙이 납치를 당한다. 그녀가 눈을 뜬 순간 발견하는 건 그녀가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모범택시 운전사와 어두껌껌한 지하실 의자에 묶여 있는 자신이다. 처음에 그녀는 자신의 애인 민석이 그녀의 생일을 위한 깜짝선물을 준비한거라 생각하지만, 이내 이 낯선 남자와 대화를 하면서 자신이 납치 된 것을 알게된다. 그것도 사이코패스한테......

개인택시 기사인 이종수는 그녀에게 '사이코 드라마'를 제안한다. 사실 그가 그녀를 선택한 이유는 그녀를 짝사랑하거나 원한이 있어서가 아니다. 단지  라디오에서 '전두엽 수술과 사이코 드라마를 통한 성폭행범 치료 '에 관한 인터뷰를 듣고 나서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사이코 드라마를 통해 이종수의 어두운 어린시절이 드러난다. 아버지의 폭행과 어머니의 가출, 그리고 그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개구리에 대한 가학행위 등은 어떻게 그가 사이코패스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 이해를 하게 된다. 공포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연민을 느끼게 하는 그의 어린 시절을 보며 김지숙은 신경정신과 의사답게 그의 과거와 현재를 어루만져 준다. 

이렇게 해피엔딩을 끝날 것 같지만 연극은 여기서 끝을 맺지 않는다. 김종수가 지하실에서 나가고 화면이 전환되면서 김지숙의 어린시절을 보여준다. 김지숙은 어린시절 입양되어 11살때 양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 그녀의 말에 따르면 "인생에서 가장 아픈 기억"이다.

이때 나오는 섬뜩한 한마디. "너는 나를 초대하지 말았어야 했어"
 
그녀는 자연스럽게 이종수에게 사이코 드라마를 유도하고, 그녀 자신을 치유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 이 부분이 반전이다. 그녀는 사이코 드라마를 진행하다 그를 묶고 드릴과 침하나로 수술을 진행한다. 예전에 양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한것처럼. 그리고 지하실에 그를 놓아두고, 아주 자연스럽게 방송사와 인터뷰를 진행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이.....

두 사이코패스가 만났을 때

연극 '콜렉터 - 그 놈의 초대'에는 두 계층의 사람이 나온다. 택시기사로 대변되는 서민과 상류층을 뜻하는 의사가 그 둘이다. 계층은 둘로 나뉘지만, 사회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은 사람들이다. 택시기사인 이종수는 사회적으로는 한 가정의 가장이자 한 아이의 아빠이며, 신경외과의 김지숙도 겉으로는 '한국의 몬테소리'라고 불릴 정도로 인지도 높은 엘리트 계층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있어 사회적 지위란 사이코패스라는 자신을 숨기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그 둘은 원하지 않는 어린시절의 영향으로 불안한 자아를 형성했으며, 위장된 둘의 자아는 외부와 차단된 사회(지하실)에 격리 됐을 때 본능이 그대로 표출된다.

지하실에서 사회적 지위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택시기사인 이종수가 의사인 김지숙에게 주도권을 갖는다. 그가 그녀의 생사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김지숙에게 자유를 박탈할 뿐 그녀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해 준다. 오로지 그녀는 그의 콜렉션 중에 하나이며 자신이 피해자라고만 생각한다. 그에게 있어 그녀의 성적 유혹은 관심 대상도 아니다.

여기서 의문이 하나 든다. 김지숙은 왜 그를 성폭행범과 똑같은 수술을 진행했을까? 그는 사이코패스지만 성폭행범은 전혀 아니다. 그는 숱한 김지숙의 유혹에도 넘어간적이 없으며, 단 한번 사이코 드라마를 통해 그녀의 양아버지 대역을 한 번 맡았을 뿐이다. 지금의 힘이 어렸을 때도 있었더라면 당하지 않았을거라는 그녀의 절규는 어린시절의 트라우마로 인해 모든 남자가 양아버지의 모습으로 보이기 때문이었을까. 이 역시도 명확하지 않은 것은 그녀의 섹스 파트너인 민석의 존재 때문이다. 어쩌면 그녀도 단순히 사이코패스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보면 이종수는 상대를 잘못 골라도 한참을 잘못 골랐다.

사회적 가면이라는 것을 쓰고 있는 우리들은 지하실에 갇혔을 때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리 사악한 모습은 아닐것 같은데, 이 연극에서는 살벌하게 표현된다. 아니면 단순 스릴러물에 지나지 않는데, 내가 너무 멀리 나간건지도 모른다.  

어쨌든, 제일 중요한 건 두 사이코패스가 만났을 때 역시 쎈놈이 이긴다는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