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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

'열구', 야구를 빙자한 인생이야기


일본일들에게 '갑자원'이란 과연 어떤 의미일까? 갑자원을 소재로 한 만화, 드라마, 소설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열구'에도 갑자원 이야기 나온다. 단지 갑자원 지역 예선이 끝난 뒤 20년 이후 시간을 주로 다루고 있다는 것이 다르다. 

처음에 '열구, 그때 우릴 미치게 했던 야구'라는 제목을 봤을 때는 열혈 청년들이 모여 야구를 하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아무 생각없이 제목만 보고 골랐기 때문에 내용에 대해서 잘 몰랐던 것이다. 막상 읽어 보니 야구 이야기가 나오기는 하지만 어떻게 보면 야구를 빙자한 인생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인지 모르겠다.

갑자원에 단골 출전하는 팀 투수의 견제구 보다 느린 공을 가진 에이스, 중학교에 7번 타자 밖에 맡지 못해던 부동의 4번 타자로 구성 되어 있던 스오고교는 갑자원 지역예선에서 20년전 돌풍을 일으키는 팀이었다. 1인칭 시점의 주인공인 요지가 "운이야, 전부. 운으로만 이겼어. 거짓말 같은, 소름끼칠 정도로 운이 따랐지, 우리한테."라고 말할 정도로 실력에 비해 운이 좋았던 스오고교는 단 1승만 더 거두면 갑자원 본선 무대를 밟을 수 있었을터였다. 하지만 하나의 큰 사건으로 인해 그 꿈은 좌절되고 만다.

차라리 결승전에 나가 졌더라면 스오고교 최고의 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영광 대신 갖은 지탄으로 멤버들은 지역 사회에 적응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던 그 사건. 주인공인 요지는 그 후 고향을 떠나게 되고 20년이 지난 후 다시 고향을 찾게 된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와 있던 고시엔은 멀리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시합을 해서 진 것이라면 후회는 있어도 단념할수 있다. 하지만 우리에겐 질 권리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후회를 꼽씹는 것이 차라리 행복할 것이라고 뼈져리게 느꼈다. -p63-

그는 소름끼칠 정도로 운이 따라서 이겼다고 딸 미나코에게 이야기 했지만, 그가 우연히 스오고교의 코치 역할을 맡게 되며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을 통해 그들이 얼마나 야구를 사랑하고 땀을 흘렸는지 알수 있다. 운도 실력이라는 이야기도 사실 준비 되어 있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다라는 말이 괜히 나온건 아니니까.
 
단 한사람(어떻게 보면 두사람) 때문에 질 권리 조차 가지지 못했던 요지와 그의 친구들은 지난 20년 동안 얼마나 숯한 후회를 했을까? 차라리 시합에 나가 졌더라면 실력이 안되었다라는 위안이라도 삼을 거리가 남았을 텐데 말이다.  

고교 야구란····슈코의 야구란 지는 것에 묘미가 있다고 우린 자와 옹께 배웠습니다. 고교 야구에서 계속 이기는 학교는 고시엔에서 우승하는 단 한 곳밖에 없습니다. 어느 학교나 한번은 집니다. 지는 것이 고교 야구입니다. 자와 옹, 당신은 우리들에게 져도 가슴을 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지는 것이 얼마나 멋지고 소중한 경험인지를 우리들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우리는 어른이 되어도 지는 일뿐이었습니다. 계속 이기기만 하는 사람 따윈 필시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당신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잘 싸웠다, 잘 싸웠어.'하고····. 어른이 되고 나서 자와 옹 당신의 목소리가 고교 시절 이상으로 또렸하게 들립니다. 그 목소리에 힘을 얻고, 용기를 얻으며 우리는 인생이라는 이름의 그라운드에 서서 행복이라는 이름의 백구를······아니 열구를 쫗아다니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자신을 응원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우리는 당신께 배웠습니다······. -p 251~252

저자인 시게마츠 기요시는 자와 옹을 위한 조사를 통해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인생에 비유한다면 우리는 항상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벌이지만 그 자리를 차지 할 수 있는 것은 몇사람 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구나 한번은 지기 때문에 지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것은 아니라고..... 자신을 응원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인생은 살만한 것이라고....

열구 - 8점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김대환 옮김/잇북(It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