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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 <위험한 상견례>, 80년대 감성이 물씬


교보문고에 책을 사러 갔다가 얻게된 '위험한 상견례' 시사회 티켓. 19금 영화인 '라스트 나잇'과 '위험한 상견례' 중 시간이 중복되는 관계로 하나만 선택 할 수 있었지만, 최근 아마추어 챔피언으로 오른 이시영에 대한 급호감으로 과감히 '위험한 상견례'를 선택하였다.(앗~! 나의 19금)


영화의 배경이 되는 것은 1980년대 후반. 전라도 남자 현준(송새벽 분)과 경상도 여자 다홍(이시영 분)은 군대 펜팔로 시작하여 알콩달콩 사랑을 키워 나가는 사이. 사랑하는 감정이 커져 가는 둘 사이에 장벽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두 집안의 골깊은 지역감정이다. 그 이후 진행되는 이야기는 로맨틱 코미디물 답게 예측 가능한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지만, 지역감정이라는 민감한 소재를 코믹하게 풀어냈다.(어차피 로맨틱 코메디의 99%는 해피엔딩이다)

감독의 역습

■  감독의 역습 첫번째
현준을 만나기 위해 광주를 찾은 다홍은 막차를 놓치고 둘은 모텔로 향하게 된다. 침대에 누운 다홍은 '손만 꼭 잡고 자요'라는 말을 현준에게 하고 아무일 없이 둘은 그렇게 밤을 지새운다.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감독의 서비스 정신을 매도 할 수는 없다. 내가 19금 영화를 보고 있는게 아니니까)

여기까지 딱 봤을 때 난 '혹시 이건 흔히 말하는 쌍팔년도 레퍼토리인가?'라는 생각을 했는데, 바로 전환되는 다음 장면이.....88 올림픽 휘장을 가득 메운 거리 모습이었다. 감독도 관객이 이런 생각을 할껄 미리 알고 있었나 보다. 마치 감독이 '이거 쌍팔년도 레퍼토리 맞아요'라고 답변을 하는듯 해서 놀랐다.

■  감독의 역습 두번째
이 영화에는 두가지 반전이 있다. 복선을 미리 깔아 놓기 때문에 관찰력이 좋은 관객에게는 반전이 아닐 수 있지만, 나같은 경우에는 둘중에 하나는 반전이었다.
 
첫번째, 일요일날 즐겨보는 '출발 비디오 여행'과 홍보 티저를 통해 이 영화는 지역감정과 관계 있다고 굳건히 믿었다. 그러나 사실 이 영화는 지역감정과 전혀 하등의 관계가 없다. 오히려 개인 감정과 관계가 더 깊다. (이렇게 쓰면 나도 스포일러 될려나?)

두번째, 다홍 집안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다. 다홍 아버지만 모르고 있었을뿐....

80년대 감성을 가진 영화

이 영화에는 80년대 감성이 듬뿍 담겨 있다.

먼저 당대 인기 스타였던 박남정씨가 카메오로 출연한다. 나이트 클럽에 끌려와서 노래를 부르는데, 거기서 분위기를 띄운다고 경상도 사투리 쓰다가 엄청 맞는다. 전라도에 와 있었는지 몰랐던거다. 재미있는건 실제로 이런 에피소드가 있었단다. 단지 맞지만 않았을뿐....

음악은 최호섭씨의 '세월이 가면'과 이시영이 부른 조하문의 '이 밤을 다시 한번'이 영화가 끝나면서 흘러 나온다. 또한 소품들도 상당히 신경썼는데, 그중에서 제일 기억나는건 오랜만에 보는 주황색 공중전화기와 스텔라 자동차였다.

껌을 한통 사면서 잔돈을 바꾸는 장면 역시 익숙한 모습이다. 이때는 그냥 잔돈 바꾸기 뭐해서 껌을 한통씩 사곤 했었다. 연애를 하면서 애인전화를 기다리는 모습은 당시 어렸기 때문에 잘 모르겠지만, 드라마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장면 중에 하나였다. 당시에는 삐빠나 핸드폰이 없을때였으니까 말이다.  

두 가족을 연결해 주는 매개체

'위험한 상견례'에는 두 가족을 연결 해주는 두가지 매개체가 사용된다.  

■  순정만화
현준은 외모와 어울리지 않게 순정만화 작가다. 80년대가 순정만화의 중흥기였고 '르네상스'라는 순정만화 전문잡지가 등장했던게 역시 88년도인것을 감안하면 직업이 절묘하게 시대와 맞는다.(이것도 의도적일까?)

'위험한 상견례'에서 순정만화는 아버지가 아들을 이해하게 되는 접점을 만들어주면서, 다홍의 아버지와 오빠가 현준을 인정하게 만드는 하나의 매개체로서 활용 된다. 

■  프로야구
두 집안은 야구와 관련이 있다. 

82년도에 출범한 프로야구는 정치적의 의도로 만들어졌지만, 지역을 연고로 하는 특성 때문에 지역감정이 묻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지역감정을 묘사하기 위해 야구를 넣은지 알았는데, 알고보니 두 아버지는 고교 야구 시절부터 알게 모르게 맺힌 원한이 있다. 이 야구가 두사람을 반목하게 만들었지만, 두 사람의 화해도 야구로 이루어진다. 

영화에 대한 간단평

현준역으로 나오는 송새벽은 마치 '방자전'의 변사또 순진버전 같은 느낌을 받았다. '방자전', '시라노연애조작단' 부터 비슷한 역할을 맞는게 배우로서의 넓은 스펙트럼보다 정형화된 이미지를 굳힐까 조금 걱정 됐다. 뭐, 그래도 어눌한듯하면서 순진한 역할은 나름 잘 해낸거 같다. 

이시영은 첫 주연치고는 나름 선방했으며 역할에 잘 맞게 애교스럽게 나왔다. 그러나 역시 옥의 티 하나는 부산 사투리를 사용 할때의 억양이다. 난 부산 여자들이 사투리를 사용 할 때 나오는 그 특유의 억양이 너무 사랑스럽다. 하지만 이시영이 사투리를 사용 했을 때 그 느낌이 잘 살아나지 않아 많이 아쉬웠다.(만약 부산분들 이거보고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김수미, 박윤식, 박철민, 정성화의 출연은 이 영화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특히 김수미의 구수한 욕설과 입담, 그리고 손발이 오그라드는 애교는 이 영화의 백미다.

어쨌든, 예측가능한 뻔한 스토리와 초반의 지루함 등 무언가 부족함이 느껴져 난 그냥 그랬지만, 한편으로는 그냥 편안하게 웃을 수 있는 영화로 본다면 나름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어차피 보는 사람에 따라 평가는 주관적일수 밖에 없으니까 상세한 평가는 유보.

극장을 나오면서 친구끼리 온 앞에 있던 사람들은 영화가 끝나자마자 나오면서 '재밌다'라는 감탄사를 내 뱉었지만, 난 오히려 이게 상당히 재밌게 느껴졌다. 보기에도 20대 초반으로 보이던데, 그들에게 80년대는 어떤 의미로 비쳐졌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