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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서울여행] 덕수궁


와이프가 물어본다.

"덕수궁에 누가 살았어?"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다. 그냥 단순히 왕이 살았던 궁이라고만 생각했지 그 역사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었던 것이다. 나의 무지함을 한탄하면서 덕수궁 입구에서 입수한 안내책자를 집어 보았다.


 덕수궁 궁역의 어제와 오늘

대한제국의 정궁이었던 덕수궁은 원래 성종(9대)의 형인 월산대군의 저택이었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서울의 모든 궁궐이 불타 없어지자 1593년(선조 26)부터 선조의 임시 거초로 사용되다가 광해군이 1611년(광해 3) 정릉동 행궁으로 불리던 이곳에 '경운궁'이라는 정식 궁호를 붙여 주었다. 그 후 광해군은 1615년(광해 7) 재건한 창덕궁으로 어가를 옮기고 경운궁은 별궁으로 남게 되었다.
경운궁은 1897년 대한제국 출범과 함께 한국 근대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전성기 때의 경운궁은 현재 넓이의 3배에 달하는 큰 궁궐이었다. 현재의 미국대사관관저 건너편 서쪽에는 증명전을 비롯해 황실 생활을 위한 전각들이 있었고, 북쪽에는 역대 임금들을 제사 지내는 선원전 일원이 있었으며, 동쪽에는 하늘에 제사 지내는 환구단을 설치하여 황제국의 위세를 과시했다. 그러나 고종황제가 황위에서 물러나면서 경운궁은 선황제가 거처하는 궁으로 그 위상이 달라졌고 이름도 덕수궁으로 바뀌었다. 이후 궐내각사 일부와 환국단이 철거되었고 이 지역은 대한제국의 상징공간으로서의 위상을 잃게 되었다.
고종이 승하한 뒤 1920년부터 일제가 선원전과 증명전 일대를 매각하여 궁역이 크게 줄어 들었으며, 1933년에는 많은 전각들을 철거하고 공원으로 조성하여 일반에 공개했다. 이처럼 덕수궁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원형을 거의 찿아볼 수 없을정도로 훼손되었으나, 임진왜란과 대한제국기의 역사적  격변을 겪은 궁궐로 국난극복의 상징적 공간이자 그 중심이었다.


입구에 들어가니 꽃이 이쁘게 피었다. 그런데 이 꽃의 이름을 모르겠다.


중화전의 모습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들의 접견 등 치르던 곳이란다.


덕수궁 미술관.
궁안에 미술관이 있다는 것이 이채롭다.



이렇게 편히 쉴 수 있는 곳도 있다.
한여름에 오면 시원하게 보낼 수 있는 장소가 될 것 같다.



이것은 영화로 봤던 신기전이다.


물시계인 자격루
와이프가 여기서 또 물어본다.

"이건 시간을 어떻게 확인해?"

"················"

■  관람시간 : 09:00 ~ 21:00(월요일 휴무)
■  입장요금 : 어른 1,000원, 청소년 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