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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컨트롤러, SF 로맨스 같은 영화


내 와이프는 호불호가 확실한 여자다. 영화가 재미 없으면 그냥 과감히 잔다. 그녀의 논리에 따르면 모든 영화는 15분내에 결정 난다고 한다.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 할 만한 내용이나 마지막 장면이 전반부에 도입 되는 이유도 제작자들이 이런 걸 알기 때문에 그렇다나.

어쨌든, 영화가 시작 한지 얼마 안되어 오늘도 과감히 잠을 자는 그녀. 평상시 같으면 잠을 자게 놔두었을 나이지만, 오늘만큼은 옆구리를 툭툭 건드려 깨웠다.

영화가 끝나고 오늘은 잔소리를 하고자 마음을 먹었는데, 엘레베이터에서 다른 커플들의 이야기를 엿들고 말았다.

"잠이 들어다가 깨니까 3년 후더라구"
"나두 그랬어"

헉! 잠이 든것은 비단 내 와이프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영화 컨트롤러에서 보여주는 세상은 모든 것이 계획 된대로 움직이는 세계다. 다시 말하면 모든 사람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으며, 이것이 예정에서 어긋나면 컨트롤러의 개입이 시작된다. 데이비드의 미래는 장미빛이다. 물론 그는 그것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운명은 매력적인 무용수 앨리스를 만나게 되면서 조정국이 가지고 있는 설계도와는 다르게 어긋나게 된다.  뭐, 결론은 사랑의 힘으로 모든 것을 승화 시키며 SF 로맨스물을 완성시킨다.


사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감독의 의도는 '사랑의 힘은 위대해'라는 말을 하고 있는게 아니라 사람의 자유 의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런데 역시 의문점은 계속 머릿속을 헤집고 다닌다. 데이빗과 엘리스는 원래 70, 80 년대 까지만 해도 운명적으로 만나도록 계획 되어 있었다. 무려 10가지 버전이 모두 그러했지만, 내 기억이 맞다면 최종 버전인 2005년대에 가서 계획은 변경 되어, 엘리스는 선거에서 패배한 데이빗에게 진솔한 연설을 할 수 있는 영감을 주는 역할 정도로 그치게 된다. 그 이후 둘은 다시는 만나면 안되는 사이지만 운명처럼 다시 만나게 된다.  

마지막에 데이빗은 분명 '자유 의지는 쟁취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는 있지만, 결국 초기에 계획된 운명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중간에 변경 된 계획은 그냥 프로그램 버그나 다름 없으니까 말이다.(이 부분은 개인적인 생각이다)

어쨌든, 개인적으로 나 역시 운명론자는 아니다. 사람의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하거나 누군가의 개입으로 인해 정해진 삶을 오차없이 살아야 한다면 그것만큼 삶의 의지를 박탈하는 것도 없을 테니까. 그런면에서 감독이 이야기 하고자 하는 주제에는 공감하는 바이다..

 
모든 영화가 그렇듯 컨트롤러에도 나쁜 면만은 있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본 것은 바로 '조정국'의 정체이다. 은근히 기독교적인 세계관이 바닥에 깔려 있는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천사들의 모습은 왠지 '맨 인 블랙'에서  본듯하지만 ,최소한 날개 달린 천사에서 벗어났다는 것만으로도 개인적으로는 조금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뭐, 천사도 인간의 모습을 할 수 있다.....

또한, 소설이 원작이라 그런지 시나리오는 나름 탄탄한 편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한 버그를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의 의문점을 해소하고 있다. 예를 들어 데이빗과 엘리스의 첫 대면에서 순간의 감정에 동요해 키스하는 장면에서는 "뭐야 이거. 이게 말이 돼!" 하다가, 나중에 가서는 "아! 이래서 그랬구나'로 변해 있으니까.

그리고 인상적인 장면도 하나 있다. 하나님이 조정원의 모습으로 데이빗을 도와주기 위해 나타나는 장면이 있다고 하는데 난 그게 언제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는데, 영화가 끝나고 내 와이프가 쉽게 해답을 주었다. "그 사람 휴가 가야 한다고 했자나". 내 와이프는 자기만 했던 아니었던 것이다.....


여튼, 이 영화는 관객에 따라 상당히 호불호가 상당히 갈릴 것 같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