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사기사 폴이 '로어노크' 사건과 관련된 책을 읽는 것으로 시작 되는 것으로 알수 있듯이 이 영화는 '로어노크 사건'이라는 역사적 실화를 모티브로 한 영화입니다. 1587년 노스캘로라이나의 로어노크 섬에서 사라진 115명의 영국 이주민들이 남긴 것은 나무에 새겨진 '크로아톤'이라는 단어 단 하나. 이것과 관련하여 다양한 가설들이 난무하지만 여전히 미제로 남아있는 세계 5대 미스테리 중에 하나입니다.
세계 5대 미스테리 중에 하나를 모티브로 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영화 내용 자체도 상당히 미스테리입니다. 감독이 상당히 불친절 하다고 할까요? 영화는 여러가지 사건을 나열하며 복선과 실마리를 제공하지만 자세한 설명은 기피하고 있습니다.
아래는 제 머리로는 여전히 이해가 안되는 것들만 한 번 정리해 봤습니다. 혹시 아시는 분 있으면 댓글로 좀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 왜 자동차 배터리만 방전?
거리에 있는 모든 자동차의 배터리는 단 한대를 제외하고는 모두 방전 됩니다. 루크는 배터리 방전이 안된 이 한대를 보고 "이것은 운(번역은 운, 영어로는 Random)이야"라고 합니다. 뭐, 어쩌다가 한대 방전 안된게 걸렸다고 하는데 여기까지는 그렇다고 치자구요. 그런데 왜 소형 배터리들은 다 말짱할까요? 이것도 뭐 달리다 보니 연료도 다 떨어지고, 배터리도 방전 됐다라고 하면 할말은 없습니다.
■ 자동차 라이트는 도움이 안되나?
갑자스런 정전에 사라지는 사람들. 하지만 자동차를 타고 있던 사람들은 분명 빛속에 노출 되어 있었을터. 과연 이 사람들은 다 어떻게 된걸까요? 하기는 말짱하게 날아다니던 비행기도 떨어지는 판에 이걸 운운하는게 우스울까요?
■ 빛이 들어오면 다시 돌아 올 수 있다?
폴은 헤드 랜턴에 불이 나가면서 어둠속에 있는 그림자에 끌려 다녔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헤드 랜터에 불이 다시 들어오면서 사라지지 않을 수 있었는데, 그럼 다른 사람들은 왜 그러지 못할까요? 이것은 불빛을 직접 소지하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 브리아나는 왜 사람을 피하지?
갑자기 등장했다 사라지는 꼬마 여자아이인 브리아나는 폴을 보자마자 도망갑니다. 마지막에 흑인 꼬마 제임스를 볼때는 아무렇지도 않게 살갑게 꾸는 꼬마 아이가 어른을 보자마자 사라지는 이유는 대체 뭘까요? 혹시 어른 혐오증?
■ 브리아나가 가지고 있는 손전등
브리아나는 태양으로 충전 가능한 손전등을 들고 다닙니다. 해는 점점 짧아지고 밤은 길어지는데 대체 어떤 충전지가 내장 되어 있길래 오랜 시간동안 들고 다녀도 방전이 안될까요? 최소한 아이폰에 사용되는 밧데리가 아닌것만은 확실합니다.
■ 크로아톤은 대체 누가 썼을까?
벽에 새겨진 크로안톤이라는 단어는 대체 누가 쓴걸까요? 손톱으로 끍어 쓴 글자인것 같은데.....
갑자스런 어둠 속에 사라지는 사람들. 비록 몇명 안되지만 남아 있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그 순간에 빛을 소지하고 있었다는 것. 그런데 영화는 끝까지 이 어둠의 정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인공들의 입을 통해 몇가지는 유추 해 낼 수 있습니다.
폴은 로어노크 사건을 언급하며 세상을 Rest 시키려는 의도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루크는 왜 네 사람은 남아 있을까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죠. 이 두 사람의 이야기와 마지막 장면을 대충 짜 맞추면 어찌 되었든 내 멋대로 결론은 낼 수 있겠더군요.
세 사람의 존재 이유는 오로지 제임스를 위해서입니다. 폴은 로어노크라와 크로아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역할이고 로즈메리는 루크가 방전된 배터리를 점퍼하기 위해 필요한 존재죠. 루크는 술집에서 제임스를 데려나가기 위해 그리고 크리아톤이라는 단어를 보고 되돌아와 교회에서 제임스가 사라질 위기에서 구해주기 위해 절대 필요합니다. 만약 이 세명의 존재가 없었다면 제임스는 엄마를 기다리기 위해 술집에서 나가지 않았을 겁니다.
이렇게 술집에서 벗어난 제임스는 브리아나를 만나 말을 타고 시카고로 향합니다. 시카고에 사람이 살아 남아 있는지는 모르지만, 만약 단 한명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세상에는 오로지 이 두 사람만 남아 있게 됩니다.
영화 '베니싱'이 종말론적 이야기를 담고 있는거라면, 이 두사람은 아담과 이브가 됩니다. 교회 장면을 비추면서 사과를 비춰 주는 장면은 이런 것을 암시합니다. 성경책에는 에덴동산에 있는 선악과가 사과라고 그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지만, 밀턴의 실락원에서 금단의 열매를 사과라고 표현하면서 사과의 이미지로 굳어 버린 것이죠. 또한 주변에 몇몇 동물이 나오는 장면들은 은근 노아의 방주를 연상하게 합니다. 지구 자체가 노아의 방주가 되는 것이죠.
인간을 Reset 시킬려는 의도는 역시 그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습니다. 역시 내멋대로 결론을 내자면, 기름이 고갈되면 사람들은 어둠속에서 헤매게 될 것이고 자동차는 영화처럼 멈춰서게 되겠죠? 그때가 되면 후레쉬와 초에 의지해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역시 거기에는 필시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답은 대체 에너지를 써야한다. 뭐 이런거 아닐까요?
이상 내멋대로 결론이었습니다.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토르:천둥의 신, 구지 3D로 볼 필요가 있을까? (15) | 2011.05.02 |
---|---|
'수상한 고객들', 사랑은 누구를 위해 사는것 (10) | 2011.04.19 |
영화 '마이 블랙 미니드레스'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 (14) | 2011.04.01 |
영화 '내 이름은 칸', 난 테러리스트가 아닙니다 (12) | 2011.03.29 |
영화 <위험한 상견례>, 80년대 감성이 물씬 (9) | 2011.03.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