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듯보면 '고지전'은 박상연 작가의 전작 'JSA 공동경비구역'의 플롯가 닮은 면이 있다. 조사관이 나가 사건을 조사하는 점이나 인민군과의 소통이 그것이다. 하지만 'JSA 공동경비구역'에서 북한군과의 만남이 이념을 떠난 따뜻한 휴머니즘을 담고 있다면 '고지전'에서 악어중대원들이 행하는 인민군과의 소통은 그들이 아직 사람이라는 점을 부각 시키기 위한 하나의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는 전쟁에서 '따뜻한 인간미'란 불필요한 점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부각하고 있다. 비무장 상태인 인민군을 과감히 사살하는 수혁을 이해 못하는 은표는 '2초'라는 별명을 가진 인민군 저격수를 여자라는 이유로 놓아주면서 결과적으로 친구인 수혁을 죽이는 결과를 낳고 만다. 인민군 장교 현정윤(류승룡)도 1950년 전쟁 초반 전투에서 포로로 잡혔던 수혁과 은표를 놓아주면서 결과적으로 고지전투에서 다시 맞붙어 싸우는 형태가 된다.
인간미가 결여된 듯한 이상한 악어중대원들의 행동은 다시 한명 한명을 포커스하면서 왜 그들이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지를 설명을 하고 있다. 소대원들을 살리기 위해 아군을 죽일 수 밖에 없었던 신일영, 중대원들을 살리기 위해 중대장을 죽일 수 밖에 없었던 수혁 등 어쩌면 전쟁만 아니었다면 평온한 삶을 살았을지 모르는 그들이지만 불필요한 소모전 양상의 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이다.
이런 전쟁에서의 리얼리티는 영웅주의가 난무하는 헐리우드 방식의 전쟁 영화들과 차별화 되는 부분이 있다. 사실 전쟁 차제는 잔인하거나 하루하루 살아남아야 하는 전장 일뿐 아름답게 미화 될 수는 없지 않은가. 더군다나 전쟁터는 하루가 멀다하고 주인이 바뀌고 2년 동안의 소모전으로 50만 이상 사망한 애록고지다. 그래서 난 한명을 구하기 위해 7명의 소대원의 목숨을 담보로 했던 '라이언 일병 구하기'류의 영화보다 상관을 죽이면서도 중대원들의 목숨을 지키려고 했던 수혁 같은 인물이 등장하는 '고지전'이 훨씬 더 전쟁 영화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인민군 장교 현정윤과 은표가 동굴에서 다시 조우하는 장면에서 은표가 현정윤에게 처음 포로로 잡힐 때 그가 말했던 "그때 말했던 전쟁의 의미가 무어냐?"(대사가 정확히 기억 나지 않는다)라고 묻는 장면은 어쩌면 이 영화가 던져주는 메시지를 확실하게 하는지도 모른다. "너무 오래되서 잊어버렸다"(역시 대사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라는 답변으로 처음에는 의미가 있는 전쟁이었는지 모르지만 어느새 아무 의미도 없는 전쟁으로 변질 되어 버린 애록고지 전투를 상징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2시간이 넘는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몰입해서 봐서 그런지 너무 빠르게 진행 됐고,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여운은 길게 남는다. 역시 전쟁에 미학이란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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