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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

달과 게, 홀로선다는 것


일본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이야기의 흐름이 참 잔잔하다는 느낌이 들때가 많다. 주인공들 사이에 벌어지는 큰 사건을 다루기 보다는 주인공들의 미세한 감정 변화에 초점을 맞추는 특징 때문에 그런거 같다. 


2011년 나오키상 수상작인 '달과 게'도 크게 다르지 않게 이야기의 흐름은 주인공들의 미세한 감정변화에 초점을 맞추며 굉장히 지루한 듯  단조롭게 흐른다. 하지만 절정 부분에 이르렀을때는 가슴이 두근두근 거릴 정도로 섬짓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나서 옆에 있던 와이프에게 제일 먼저 한 이야기가 "무섭다"였을 정도다.

파리대왕과 데미안의 느낌

신이치는 아버지 회사의 부도로 인해 가마쿠라에 있는 할아버지 집으로 이사를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고, 신이치는 학교 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해 왕따 신세가 된다. 그의 유일한 친구는 같은 전학생인 하루야 단 한명뿐이다. 그들의 유일한 낙은 방과후 바닷가에서 소라게 껍데기를 불러 지져 떨어지게 하는 놀이다. 그러나 점점 놀이는 수위가 높아져 소라게를 직접 불로 지져 소원을 비는 놀이로 변화 된다. 놀이 수위의 변화와 함께 그들의 숨겨진 일그러지고 악한 본능도 서서히 드러나게 된다.

어른도 아닌 그렇다고 아주 어리다고 하기에는 어려운 나이대의 소년과 소녀들의 일그러지고 악한 본능에 대해 조명 하는 것은 왠지 '파리대왕'과 '데미안'을 적절히 섞은 듯한 느낌도 들었다.
 
'파리대왕'에서 소년들이 점점 흉폭해지고 멧돼지의 머리를 숭배하는 것처럼, '달과 게'에서주인공들의 소원은 점점 위험 수위가 높아지고 소라게를 소라검이라는 소라신으로 비유한다.

악한 본능과 자신을 보호해 주는 소라라는 존재는 '데미안'에서 알을 깨고 나오는 새와는 정반대의 느낌이지만 '고통'이라는 공통분모를 자기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을 들었기 때문이다.

홀로 선다는 것

게'의 주인공은 초등학교 5학년인 세명의 어린 아이다. 아버지를 암으로 잃고 엄마와 할아버지와 같이 살고 있는 신이치, 아동 학대에 시달리는 하루야, 그리고 어머니 없이 아버지와 같이 사는 나루미. 이들의 공통점은 아이들이 결손가정에 속해 있거나 아동학대에 방치 되어 있다는 점이다. 또한 신이치와 하루야는 학교에서 의지 할곳이 단 둘 밖에 없는 왕따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거 아나? 니한테 미움 받으면 내는 이제 갈때가 없다."

하루야가 이야기 하는 것처럼 이들중 누가 하나 없다는 것은 혼자가 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그럴까? 신이치와 하루야 사이에 끼게 되었을 때 둘 사이에는 질투라는 것이 생긴다. 이뿐만이 아니라 하루야는 자신을 자학 하면서까지 신이치의 소원을 이루어 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신이치와 구루미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연애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이 조금 더 어른스러웠거나 나이가 들었다면 충분히 이해가 가고 지지 했을 그 둘의 사랑. 하지만 이 둘의 사랑이 의미하는 것은 그 둘에게는 홀로 된다는 느낌이었을까? 신이치는 소라검에게 구루미의 아버지를 없애 달라고 소원을 빌 정도로 증오심을 불태운다.

그러나 이 세명은 언제가는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아이들이다.

사람은 늘 혼자다. 단지 자신들의 옆에 누군가가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혼자라는 것을 잊고 사는 것일뿐 혼자라는 데에는 변함이 없다.

"인생은 독고다이"야 라고 아내애게 이야기 했다가 한소리 들은 적도 있지만, 사람은 언제가는 홀로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아직 이들에게는 그런 시간들이 힘겹게 다가오겠지만 말이다.

달과 게

사람들은 수많은 가면들을 가지고 산다. 가면들 뿐만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보호하는 소라집을 하나씩 가지고도 있다. 그것이 이 책에서 이야기 하는 것처럼 악한 본능이든 아니면 약한 내면인지를 떠나서 말이다.

라이터 하나로도 강하디 강한 껍질도 버려야 할 우리의 내면은 어떤 모습일까?

'달과 게'에서의 게는 추한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신이치 꿈속에서 아버지가 암으로 죽었을 때의 게는 아버지의 몸을 서서히 먹어버리는 존재다. 참고로 영어로 암은 Cancer로 게라는 뜻이다.

또한 게는 소원을 이루어지는 역할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신이치의 내면의 변화와 함께 추한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

반면 달은 책의 표지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이런 추한 모습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존재이자 자신의 내면을 비춰주는 거울의 역할이다.

신이치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음에도 이것을 막으려고 했던 것은 자신의 추한 모습이 달빛에 비춰지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신이치의 할아버지인 소죠는 "신이치, 뱃속에다 너무 묘한 걸 기르지 말거라'라는 말로 신이치의 증오를 알고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그도 신이치와 똑같은 과정을 거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니면 역시 나이에서 오는 연륜을 속이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